안녕하세요! 캠프의 지기입니당!
설 연휴는 모두 잘 보내셨나용? 몸도 마음도 따뜻하게 채운 설날 연휴가 되셨길 바랍니다!
늦었지만 모두 새해복 많이 받으시고 2019년 행복하게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필리핀 TMI 주제는..! (두구 두구 두구)
바로 필리핀의 역사입니다!

필리핀의 역사를 알아두면 필리핀에 대해 이해하기 더 쉽겠죠?
알아두면 더 재밌는 필리핀의 역사! 저와 함께 배워보아요!
필리핀과 한국 모두 식민지였다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지금의 필리핀이 있기까지 어떻게 독립해왔고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합시다!우선 필리핀의 정보부터 알아보도록 합시다!

필리핀은 아시아 동남부 태평양 섬에 있는 공화국이며, 정식 명칭은 ‘필리핀 공화국(Republic of the Philippines)’ 입니다. 필리핀은 동남아시아 북위 4도 23분 21도 25분, 동경 116도-127도 300,000km에 위치해있습니다.
이렇게 봐서는 감이 안오실텐데 다음 장에 필리핀 지도가 나와있으니 거기서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필리핀은 고온 다습 아열대성 기후이고, 11월부터 5월까지는 건기, 6월부터 10월까지는 우기로 구분합니다.

필리핀의 인구는 1억 575만 명으로 세계 12위, 동남아시아 2위로 인구가 많은 나라에 속합니다.
필리핀의 수도는 마닐라이며 마닐라에는 170만 명의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인종들이 살고 있는데 말레이계가 주이며, 네그리토, 인도네시아, 중국, 베스디스, 모로 등의 종족들이 있으며 혼혈 종족도 많습니다.

필리핀은 로만 가톨릭이 83%이며 기독교가 9%, 이슬람교 5%, 기타 종교인들이 있습니다.
필리핀의 언어는 필리핀어(따갈로그어), 영어(공용어) 외에도 각 지방 토착 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필리핀은 필리핀해, 셀레베스 해, 남중국해의 경계를 이르며 타이완 섬과 보르네오 섬, 셀레베스 섬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필리핀은 세개의 섬으로 구분하고 있는데요, 지도의 북부지역의 루손 섬, 중부지역의 비샤 안 제도, 남부지역 만다나오 섬으로 구분합니다. 필리핀은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해양국으로 인근 바다가 태풍 발생지이며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화산과 지진의 피해가 적지 않은 편입니다.

고고학과 인류학 자료에 따르면, 필리핀은 대륙의 일부였으나 화산 폭발로 인해 대륙으로부터 분리되었다고 합니다. 고대 필리핀에 살고 있던 원주민 대부분이 말레이인, 네그리 토인이라는 점이 필리핀이 명확하게 동남아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합니다.
앞에서 필리핀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알아봤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필리핀의 역사에 대해 알아볼까요?
필리핀은 크게 스페인 식민 이전의 시대, 스페인 식민 시대, 미국 식민 시대, 일본 식민 및 독립 시대로 나뉩니다.
스페인 식민 이전의 필리핀은 선사시대부터 1571년 스페인의 지배를 받기 이전까지의 시기를 말합니다. 고대 필리핀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필리핀 섬 발견 당시 통일된 중앙정부나 국가가 성립되지는 않았지만, 규모는 작았으나 ‘바랑가이’라는 조직체가 존재했다고 합니다.

바랑가이는 사람들이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에서 필리핀으로 이주해 올 때 타고 온 작은 배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합니다. 바랑가이는 30-100가구 정도로 구성된 가족 중심의 부락 공동체입니다. 산악과 섬으로 이루어진 지역적 여건에 따라 필리핀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합니다. 바랑가이의 우두머리는 ‘다투(DATU)’라고 합니다.

다투는 바랑가이 내에서 최고 행정권자이자, 재판관, 입법가, 군사 지휘관 등의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바랑가이는 가장 낮은 단위지만, 당시에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행정단위였습니다.

필리핀 섬은 누가, 어떻게 발견하게 되었을까요?
스페인의 탐험가 마젤란(Magellan)이 필리핀을 최초로 발견합니다.
당시 스페인의 국왕이었던 펠리페 2세의 이름을 따서 필리핀이라고 명명합니다.
스페인이 필리핀을 발견한 시점부터 식민지화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필리핀은 통일된 국가나 중앙정부가 없었습니다.
때문에 필리핀은 정치적으로 통합되지 않은 개체 집단이었기 때문에 조직적인 저항이 불가능 했습니다.
따라서 스페인을 저항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았오 우월한 대상으로 바라봤다고 합니다.
스페인 역시 필리핀은 적극적으로 파괴해야할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필리핀에게 약탈해야 할 값진 물건이 있거나 저항 조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스페인의 필리핀 침략 목적은 기독교 전파 및 무역을 통한 부의 축적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스페인은 필리핀을 발견한 1571년부터 1898년까지 327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지속적으로 필리핀을 지배해왔습니다. 327년 간 필리핀은 어떻게 민족정체성을 깨닫고 저항하게 되었을까요?
세부에 근거지를 두었던 스페인인들은 이후 몇 년간 필리핀 주변에 대한 조사와 탐험 등을 통해 필리핀 정복의 기반을 다져왔습니다. 이 후 스페인은 마닐라를 수도로 건설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마닐라 지역에 부족형태로 거주하던 이슬람 교도와 치열한 싸움을 하개 됩니다. 이 전쟁을 ‘모로전쟁’이라고 합니다. 무슬람 교도 사람들은 모로(moros)라고 불리기 때문에 모로 전쟁이라는 이름이 지어지게 됩니다. 모로 전쟁은 3세기 이상 이어지며 결국 스페인의 지배 영역은 북, 중북에 그치며 남부의 민다나오 지역은 이슬람교가 지배하게 됩니다. 결국 식민지 시대가 끝날 때까지도 스페인은 민다나오 섬을 완전히 지배하지 못하게 됩니다.

19세기 이후부터 필리핀의 저항운동이 시작됩니다.
이 시기부터 필리핀은 경제적, 정치적으로 개방되었으며, 스페인의 식민지 정책이 유화적으로 변하자 외세에 반대하는 필리핀 국민들의 민족주의 정신이 결집되기 시작합니다. 때문에 필리핀에서 민족적 자각이 일어나게 되었고, 1892년 <필리핀 민족동맹>이 조직되어 사회개혁을 시도하게 됩니다. 이후 비밀결사조직인 ‘카티푸난(katipunan)의 무장봉기도 일어나게 되며 저항운동이 일어납니다.

1896년 스페인이 지배를 하던 쿠바에서 미국과 스페인의 독립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미 해군은 쿠바 자국 거류민의 안전 확보와 보호를 위해 메인 함을 급하게 파견했으나
이와 동시에 일어난 원인 불명의 폭발 2회와 함께 메인 함이 침몰하게 됩니다.
미국은 이 폭발의 원인을 스페인으로 몰아 전쟁의 구실로 삼았습니다.

미국은 쿠바 독입에 대한 절대적 지지와 쿠바의 독립을 도울 것을 의결하며 전쟁을 선언합니다.
카리브 해와 필리핀에서 모두 참패한 스페인은 종전에 동의하였고 쿠바의 독립을 인정하고 괌과 푸에르토리코를 할양했으며 필리핀을 200만달러에 강매하게 됩니다.
1896년부터 무장독립운동을 전개한 필리핀 독립운동 지도자 에밀리오 아기날도(Emilio Aginaldo) 장군이 미국 스페인 전쟁에서 스페인이 패배하며 1898년 6월 12일 필리핀의 첫 독립이 선언되며, 필리핀 제 1대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게 됩니다. 그러나 미국은 미국 스페인 전쟁으로 필리핀의 독립을 돕기 위해 스페인을 물리쳤지만 파리 조약에서 필리핀을 매입하여 자국의 식민지로 삼고자 했고 필리핀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필리핀을 점령하기 위해 격렬히 저항하는 필리핀인들 60만명을 학살합니다.

또한 아기날도가 이끄는 무장 독립운동은 1899년부터 1901년까지 계속되었으나 1901년 아기날도 체포를 기점으로 소멸되어 미국이 본격적으로 필리핀을 지배하게 됩니다.

미국은 필리핀을 1898년부터 1941년까지 통치하게 됩니다.
미국의 지배 아래 필리핀의 정치 및 행정 체계는 급속한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1907년에는 최초의 의회선거가 실시되었으며 1916년에는 양원제가 도입되는 등 자치권을 더 많이 주는 방식으로 변화합니다.

교육 체계 역시 많은 변화를 겪게 되는데요, 미구의 주도 아래 체계적인 학교 교육이 시작됩니다.
학교에서의 교육은 모두 영어로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필리핀은 공용어로 영어를 사용하게 됩니다.
미국의 식민지 교육 정책은 가장 체계적이며 효율적인 필리핀 지배 수단이었습니다.

미국은 필리핀의 공중보건을 개선하고 무료 보건소 혜택을 도입함으로써 필리핀인들의 평균 수명을 연장시켰으며, 이로 인해 인구가 크게 증가하게 됩니다.

1934년에는 ‘필리핀 독립법’이라고 불리는 타이딩스-맥더피 법을 통과시켜 10년 후 필리핀의 완전 독립을 보장하기도 합니다.
2차 세계대전 시기인 1942년 1월 일본군이 마닐라를 점령하게 됩니다.
1942년 12월 진주만 공습을 통해 미국을 침공한 일본 제국은 필리핀 루손 북부부터 침공하여 필리핀 자치령을 침범하였고 1942년까지 미국을 몰아내고 필리핀 제도를 점령하게 됩니다.

필리핀 제2공화국이라는 괴뢰국을 수립하게 되며 필리핀은 일본의 지배 아래 놓입니다.

그러나 필리핀의 저항운동은 즉각적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크게 두 조직을 중심으로 대일항쟁을 진행하게 됩니다.
대미 항쟁에 근원을 둔 후쿠발라하프와 미군의 지원을 받는 유사페 게릴라 두 양대 세력이 있게 됩니다.
일본 침략이라는 상황과 미군의 지원을 받는 유사페 게릴라들의 활동으로 항일의 과정에서 민족주의자이며 친미를 표방하는 세력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필리핀의 민족운동은 다소 복잡해졌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참패한 후, 1946년 7월 4일 필리핀은 독립하게 됩니다.
마누엘 로하스가 새로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필리핀은 주권을 획득하고 본격적으로 필리핀 제3공화국을 설립합니다. 그러나 필리핀의 경제는 미국 시장에 심하게 종속되어있는 상태였습니다.
미국으로부터 전쟁 재활 보조금을 받기 위한 선결조건으로 통과된 <필리핀 무역 법>은 미국과 필리핀의 경제적 종속관계를 더욱 더 강화시킵니다.

또한 1947년 필리핀 미군 기지 협정이 체결, 미국에 경제적 협조를 받는 대신에 미국에 공군, 해군 기지 임대를 보장하게 되며 더욱 더 미국의 종속 강화가 심해지며 필리핀의 실질적인 독립은 달성할 수 없게 됩니다.이후, 1972년-1986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정권을 차지하게 됩니다. 마르코스는 1072년 계엄령을 발표하고 반공을 내세워 야당과 만다니오 섬의 무슬림을 대대적으로 탄압합니다. 이후 여론의 악회로 계엄령을 폐지하며 부정선거로 3선에 성공하는 등 독재정치를 이어갑니다.

마르코스가 정적으로 탄압했던 베기니 노 ‘니노이’ 아키노가 미국 망명 생활을 끝내고 귀국해 필리핀 마닐라 국제공항에 들어서자마자 암살 당한 사건을 계기로 반 마르코스 여론이 거세지며 국민들의 시위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마르코스는 대통령 선거를 앞당겨 치러 대선에서 승리해 정권을 연장할 생각으로 또 한ㄴ번의 부정선거를 저질러 상대 대통령 후보인 니노이 아키노의 부인 코라손 아키노 부인에 승리하게 됩니다.

그러나 코라노 아키노는 물론 필리핀 국민들도 이에 불복하였고 결국 1986년 마르코스는 하와이로 망명하게 됩니다.

독재자 마르코스가 망명한 후 베그니노 아키노의 아내인 코라손 아키노가 ‘피플 파워’ 무혈 봉기를 이끌어 6년을 대통령으로 재임하게 됩니다. 반정부 인사들을 대거 사면하고, 대통령의 임기를 6년 단임제로 제한, 지방분권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등 민주화에 적극적으로 기여합니다.

이후 피델 라모스, 조지프에스트라다, 글로리아 아로요, 베그니노 아키노 3세 등이 대통령을 거치며 절차적 민주주의가 점차 정착되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르코스 시절부터 악화된 치안, 내전 문제나 정치계에 만연한 부패, 소수 가문의 정치 독점 등은 필리핀 발전에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필리핀 TMI-필리핀의 역사편! 재미있게 보셨나요?
식민시대와 독립운동 과정을 거친 필리핀의 역사는 어쩌면 우리나라 역사와도 닮은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필리핀 여행 시에 필리핀의 역사 편을 보고 유용한 TMI 많이 얻어가시길 바랍니다!
다음 편엔 더욱 더 알찬 TMI 준비해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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